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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창가에 앉아 뒤란을 바라보고 있어요. 초록빛을 띠는 잔디가 봄을 성큼 데리고 온 느낌이어요. 나뭇가지 끝에는 도톰한 잎눈이 맺혀 있어 언제라도 연둣빛 잎사귀를 내밀 준비를 마친 듯해요. 릴리와 부추는 손가락만큼 씩이나 벌써 싹을 내밀었어요. 테크 문을 열고 나가 보니 봄바람이 얼굴을 스쳐요. 이만큼 가까워진 봄의 생기가 뜰 안 가득 퍼져와요. 노랗게 꽃 피울 달맞이 꽃무덤이 보이는 듯해요. 하얀 꽃잎을 기지개 켜듯 피워낼 데이지의 가느다란 줄기가 서로에게 기대며 바람에 흔들리는 꿈을 꾸어요. 뭉쳐 있는 낙엽을 줍고, 흙을 고르며 봄날 아침을 마음에 담고 있어요. 기다림의 끝에서 꽃신 신고 오는 당신을 만나요.   당신 손길 같은 봄날   1  아직 멈추지 않고 살아있음을 알게 해준 봄 / 끝이 있으면 시작이 찾아옴을 알려준 / 기억이라는 선물을 펼쳐 보여준 봄 / 작은 관심에 큰 기쁨으로 되돌려준 / 조용한 침묵의 기다림을 알게 해준 / 성실하게 반응하는 법을 가르쳐준 / 나의 권리를 포기할 수도, 나의 권리를 주장할 수도 있음이 당연함을 알게 해준 봄 / 나를 상실할 수 있었음에도 대지의 몸으로 다시 뜨겁게 달궈준 / 신비한 생명의 끈질김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해준 / 창조주의 손길이 엄마의 손길과 닮아있음을 느끼게 해준 / 잃어버릴 뻔한 색깔들을 되찾게 해준 / 흉내와 진심을, 죽음과 삶을, 구별해 보여준 / 방황과 포기의 날에 살아가는 이유를 알게 해준 봄 / 울타리를 열고 다른 세상의 문을 들여다보게 해준 / 느낌과 감정에 자유의 언어를 부여해 준 /  우주 속 소우주가 펼쳐지는 뒤란의 / 그리운 사람의 마음을 마구 훔쳐 가는 / “뭐야 이거?” , “이게 뭐지?” 하면서 빠져드는 봄 / 온통 당신 눈물로 맺힌 봄, … 봄   2 엄마 부르면 먼 길 가셨는데 눈 녹듯이 마음속에 피어나 종일 가슴에 삽니다   언제 어디서라도 엄마 부르면 가슴부터 웁니다 봄이 다소곳이 기대와 두 눈에 눈물 고입니다   엄마 목소리 들려 동구 밖으로 나가보니 출렁이는 백열등 아래 엄마 손이 약손이다 아픈 곳 쓸어주는 봄바람   엄마 부르면 먼 길 가셨는데 봄 오듯이 뒤란 가득 피어나 평생 가슴에 삽니다   3 끝난 것이 아니라 다시 시작이다 / 살아가는 반경은 작고 심플하게 / 포용과 사랑의 온도는 더 높고, 뜨겁고, 빛나게 / 감성은 꽃을 피우듯 풍요롭지만 절제되게 / 삶의 무게는 날아 오르는 새의 무게만큼 가벼웁게 / 내 마음을 물들인 단풍처럼 더 붉게 타오르면서 / 촛불같이 자신을 태워며 사라져도 환하게 비추면서 / 땀을 비 오듯 마지막 구간을 달리는 마라토너처럼 / 끝난 것이 아니라 매 순간 다시 사는 것처럼 / 해와 달이 함께 떠 있는 날에도 슬퍼하지 말고 / 무슨 일이 일어난 듯 허둥대지 말고 / 이슬로 깨어나는 당신의 아침을 맞으면서 / 연두의 입눈을이 터지는 설레임으로   4 나에게 오셔요 반짝이며 날 이끌어 주셔요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사라질 어둠을 나는 알지요 이제 먼동이 트면 당신은 원래의 모습으로 녹아질 테니 오시려거든 빛으로 오셔요 당신을 쳐다볼 수 없지만 천지에 가득한 봄은 공허한 가슴을 채워주네요 소리 없이 다가와 바람 속에서도 나를 흔드는 하늘 가득 당신이어요   내 안에 살게 가만두셔요 지난겨울 눈꽃처럼 흐드러지게 필 시간이어요 한겨울 죽은 듯 숨죽여 봄을 피운 당신 아닌가요 삶의 흔적, 기대의 자리마다 흐른 시간이 거름 되어 가지마다 터질 듯 피어날 봄 내 안에 살게 가만두셔요 흔들릴수록 아픔은 희망으로 움 틀 터이니 가만히 바라만 보셔요 일제히 눈꽃처럼 피어날 봄날 기적앞에 당신이 있어요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엄마 목소리 봄날 기적앞 흔적 기대

2025-03-25

[삶의 뜨락에서] 넘어진 김에 쉬었다 가자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주었다/ - 그 유명한 T. S. Eliot ‘황무지’의 시작이다. 그가 말하는 황무지보다 더 황량하고 험한 세상을 지난 2년 이상 잘 견뎌오다 이번에 쓰러졌다. 코로나19가 무섭게 창궐하던 2020년 3월은 중환자실의 최전방에서 침상 하나 건너 한 사람씩 죽어가는 환자를 돌보고도 전염되지 않고 무사히 견뎌 ‘Super Hero’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개나리가 지천에서 해맑게 웃고 벚꽃과 목련이 흐드러지게 춤을 추는 찬란한 봄날에 본의 아니게 방콕을 하게 되었다. 넘어진 김에 쉬었다 가자. 내가 언제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단 말인가. 밀린 잠을 실컷 자고 밀린 책들을 실컷 읽자. 그러다 운이 좋으면 좋은 글을 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지난 일요일 근무하는 중에 몸이 후끈거리며 목이 아프고 뼈마디가 쑤셔왔다. 아! 이게 바로 코로나 증상이구나 하는 확신이 갔다. 집에 오자마자 남편과 함께 검사한 결과 둘 다 양성이었다. 병원에서는 공식적인 데이터가 필요하다고 해서 Urgent Care에 갔다. 양성을 확인한 후 서류를 접수하고 5일간의 휴가를 받았다. 이 얼마 만에 가져보는 꿀맛인가.    딸네의 에피소드는 드라마틱하다. 사위가 캐나다 몬트리올로 1박 2일 비즈니스 트립을 갔다. 돌아오는 비행기 탑승을 위한 PCR에서 양성으로 판정 났다. 탑승을 거부당해 당황한 사위는 렌터카를 해서 밤새 8시간을 운전해 새벽 3시에 집 근처 호텔에 투숙했다. 증상은 목이 아프고 기운이 없다고 했다. 부지런히 음식을 배달했다. 원래 계획은 5일간 호텔에서 격리할 생각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나흘째 되던 날 집에서 두 아이를 돌보고 있던 딸아이가 양성이란다. 그 날 우리 집에는 서울에서 손님이 왔다. 딸은 아이들을 학교에서 집에 데려다 놓고 사위에게 연락을 하니 즉각 호텔에서 철수했다. 그는 집에 오자마자 당장 딸을 방에 격리한다. 본인도 아픈 상태에서 두 애를 돌보고 아내와 자신까지 돌보아야 하는 완벽주의자 사위가 대견하고 안쓰러웠다.     우리 집에서는 서울에서 오신 손님이 배탈이 나 음식준비에 조금 신경을 쓰고 있던 참이었다. 밤 8시, 문자가 뜬다. “엄마 나 너무 배고파, 12시에 점심 먹고 지금까지 아무것도 못 먹었어, Dan은 나의 존재를 잊어버린 거 같아, 밖에서 문을 잠그고 나 완전히 감금당했어! OMG! 젖은 눈을 닦으며 부랴부랴 음식을 남편을 통해 전달했다. 다시 문자가 뜬다. Dan이 방금 박스에 물 8병, Nyquil, Vitamin C를 담아 뒷마당을 통해 딸이 머무는 방의 창문으로 들여 밀었다. 사위는 두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사투를 한 것이다. 그 뒤로 딸은 5박 6일 외로운 격리 생활을 시작했다. 두 아이는 방과 후 엄마의 부재를 절감한다. 5살의 아들은 이 상황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이제 겨우 읽고 쓰기를 시작한 그는 날마다 love note를 문 밑으로 배달한다. 아주 감동적이어서 훗날 내가 그 노트를 모아 ‘코로나의 흔적’ 정도로 작품화할 계획이다. 2살 난 손녀는 분명 엄마 목소리는 들리는데 왜 만나면 안 되는지 의아해하는 표정이 앙증맞다. 사위의 철저한 관리로 두 아이는 지금도 음성이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완벽주의자 사위 엄마 목소리 근처 호텔

2022-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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